뜬금없는 저의 러브라이버 인생 이야기가 나오니 아래는 보실 분만 보시면 됩니다. 접어두기 기능 처음 써보네요.
제가 μ’s를 처음 알게 된 건 2013년 1월 20일(경)이었습니다. 니코니코 동화에 당시 올라오기 시작하던 '애니를 니코동에서도 동시방영하자' 로 인해 처음 러브라이브를 보게 되었습니다. 그때 제가 1화를 보면서 생각한 건 모 라디오에 온 편지와 비슷한 상태였는데 '아~이번 분기 신작인가~~ 전부 돌아봐야지~' 였습니다. 그렇게 보게 된 러브라이브 1기 1화, 저는 8분만에 종료를 누르고 게임 실황을 보러 갔습니다
당시 저는 열심히 리겜을 하며 쓰레기처럼 살던 때였습니다. 롤도 하고 마크도 달리고 미친놈처럼 놀면서 나는 쓰레기임을 증명하고 다녔는데(학교는 열심히 안 감)그땐 애니보는욕구도 상당했습니다. 뭔 말이냐면 신작 다 돌려 보고 평가 신경 안쓰고 일단 봐보고 했다는 말. 근데 8분만에 껐다는건 말이 좀 모순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전 그때 자신의 판단으로 끝까지 안 볼 것 같으면 언제든 끊었습니다. 그렇게 저는 러브라이브와 이별을 하고 앞으로 볼 일은 없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. 당시엔 애초에 그 애니가 러브라이브 스쿨 아이돌 프로젝트의 일부임도 모르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걍 모든걸 몰랐습니다. 성우가 누군지 애초에 성우가 중요한지 이런 것 까지도. 그리고 한국을 갔으니 애초에 완결까지 보진 못했겠지만. 니코동 동시방영은 물론 일본 제한인 것
그렇게 시간이 흘러 13년 1분기 애니가 끝난 후(그때 본 건 코토우라상 로보노츠 등)2분기 애니를 하던 때, 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러브라이브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. 아마 그 때 1분기에 안 봤던 다른 애니들도 같이 본 것 같은데 그랬던 것 같습니다. 따로 러브라이브를 찾아 본 건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제가 완결충이었습니다 완결 났으니까 봐야지 하면서 1분기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던 완결작들을 다 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. 그때 제가 안 봤다면 무슨 인생의 낙으로 살았을지 모르겠네요. 그렇게 보기 시작한 러브라이브 1기. 초반 내용이 별로인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고 3화가 대단한 피크였음도 알고 있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. 당시 3화가 승부수였고 성공했다고 하던 수리님은 어디 가고 지금은 이렇게...강렬한 럽까로...극렬한 럽까로....
그리고 시작된 제 러브라이브 인생. 초기엔 마키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멤버에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. 근데 원래 입문은 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요. 성우진도 잘 몰랐고 그냥 아 나의 평생의 동반자를 찾았군. 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.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μ’s는 9명이 하나. 라는 대원칙이 생겼을 뿐. 그 날 이후 트위터에서 절 보신 분은 알겠지만 제 트위터에서의 행동은 두가지로 고정됐습니다. 하나는 아침애자/점심애자, 하나는 마키. 정말 충실하게 살았습니다. 공부 안 한건 빼고. 이건 다른 이야기니까 빼면 정말 러브라이브에 충성을 다한 나날이었죠.
그리고 그 때부터 저는 사실상 애니만 보고 빨았습니다. 성우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런 건 잘 몰랐어요. 아무래도 애니로 들어가기도 했고 당시 저는 그다지 씨ㅃ뜨억이 아니었고. 입문자였죠 입문자. 그러다 보니 당연히 3rd 라이브는 불참. 애초에 있는지도 몰랐는 데다가 그땐 아이시테루 반자이 들으면서 이게 무슨 노래징ㅋㅋ하던 때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. 아마 알았더라도 안 갔지 않을까... 물론 참여 하려고 했어도 불가능했겠지만 뷰잉이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. 이 사람은 이 일을 나중에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후회하게 됩니다. 지금도 후회중이죠. 서드라이브를 못 보다니.... 일본은 갈 수 있었는데.
그러던 중, 언젠가부터 러브라이버들을 보기 시작하면서(저는 자생 타입이라서 아는 사람은 없었으나 트위터로 검색을 때린다던가 픽시브를 돈다던가 해서 정보를 얻었죠)이런 것들이 많구나. 동인계가 상당히 넓군, 등의 지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. 그 때쯤에 저는 마키쨩 하아하아이긴 했으나 그 뒤로 가지 않으면 계속 해먹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다음 단계를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. 그러던 어느 날 듣게 된 4th 라이브 소식. 솔직히 이것도 당시 일본을 갈 생각은 안 했습니다. 왜 그랬을까. 하지만 그에게 광명이 찾아왔으니 그것은 라이브 뷰잉 소식.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라이브 뷰잉을 해 준다고 했습니다. 당시 동지 우 고나힐 님과 함께 가게 된 4th 라이브 뷰잉. 그것은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.
그 날 이후 저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전도라던가 포교라던가 하는 단어로 포장되는 패악질(..)을 하기 시작했습니다. 그때 기분 나빴던 여러분 미안해요 지금은 강요하지 않아요. 당시엔 말만 그랬지 사실상 안 볼거여도 보세요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. 하여간 그만큼 럽뽕이 가득차고 사람이 생기가 넘친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됩니다. 열심히 살 이유가 생겼으니까요. 당시 제 모습을 본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 나는 힘찬 기분이 든다! 였습니다. 음반을 듣고 콜을 외워가면서 점점 더 러브라이브!에 가까워지고 싶어서, μ’s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무슨 짓이든 다 했던 때였습니다. 일본을 자주 갈 기회가 있던 저는 물론 가면 아키바를 돌았는데 이전엔 잡-덕후에 게임등이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의 기준이 러브라이브였죠. 이 돈으론 뭘 할 수 있고 등등. 리게이 분들은 아마 알 거에요. 이게 몇 코인이다, 저게 몇 코인이다. 등
그리고 그 뒤로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죠. 2기라던가 란마츠 내한!!!!!!!!!!!!이라던가 5th!!!!!!!!!라이브 뷰잉이라던가. 4th때 정말 아쉬웠던 양일 뷰잉을 실현해줘서 정말 좋았습니다. 럽장판은 제가 입대 후에 개봉했습니다만 아마도 절 아시는 분들은 알 텐데 해외여행을 감행하면서까지 관람했죠. 그게 6월 15일인가..개봉 이틀 째였는데. 14일인가. 란마츠나 뷰잉도 전부 입대 후 입니다만 저는 의지의 러브라이버, 전부 휴가를 맞췄습니다. 지금보면 그게 된 것도 정말 신기한데. 6th도 맞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중입니다.
이렇게 저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저의 러브라이버 인생. 어제 유출된 '그' 영상 때문에 멘탈이 박살나며 사람들과 절규하다가 정신과 마음 정리 목적으로 갑자기 쓰게 됐는데 제가 잘 기억나지 않던 것들을 되짚어보며 생각해보니 기억이 나서 이득봤네요. 십-이득. 하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고통뿐입니다. 또다시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제 삶이 러브라이브인게 아니라 러브라이브가 제 삶을 연장시키고 있는 상태라 과연 얼마나 버틸 지 모르겠습니다. 불타는 충성심으로는 타개할 수 없는, 오히려 더 악화되는 이 상황에서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. 일단 라이브 응모랑 나오는 굿즈는 살 거지만, 끝나더라도, 끝나기 때문에, 끝까지 저는 러브라이브를, μ’s를 응원하고 그녀들의 자금줄이(...)될 거지만.
제가 덕-후들을 보면서 얻은 교훈이란 건 죽은 컨텐츠는 없다는 것입니다. 팬덤이 죽는다거나 공식이 죽는다거나 이야기 자체가 죽는다거나(진행이 더 불가능하다거나)하는 일은 언젠가 올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영원히 함께할 사람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. 어떤 것도 공급되지 않더라도 자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. 설령 지구상에 저 혼자 μ’s를 파게 된다고 하더라도(그럴 일은 없겠지만) 저는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. 되게 할 겁니다. 의지의 러브라이버니까요.
물론 봐오면서 배운 건 환승하는 사람이 영원한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거긴 합니다만(...) 이렇게 해서 일단 심야에 적은 뜬금포 개소리는 끝입니다. 아침에 보고 부끄러워서 지울 지 모르니까 볼 사람들만 보세요. 러브라이버들이 잘 오진 않긴 합니다만... 온다면 여러분은 어땠는지. 어떤지. 어떨 것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. 그럼 이만